'IL-DONG GRADUATION'
일동졸업 – 사라지는 밤의 기억을 모으다
부산 범일동. 밤이 되면, 익명의 존재들이 제자리처럼 모여들던 골목이 있다. 그곳에는 노래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때로는 울음을 꾹 참으며 건네는 위로가 있었다.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들이 가장 자기답게 숨쉴 수 있었던 장소, 그게 범일동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골목이 사라진다.
이 전시는 범일동 게이바 골목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사장님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단골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울고 웃는 밤을 지켜온 이들의 말은 곧 이 동네의 역사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했고, 그들이 꾸려온 공간의 풍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감정들이지만, ‘졸업’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기로 했다.
「일동졸업」은 이 골목을 떠나보내는 우리만의 의식이자, 사라질지라도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한 기억의 보존 운동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왜 기록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이 골목은 누군가에겐 처음으로 가족이 생긴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무대였다.
지금, 우리는 이 거리를 졸업하지만, 이 기록들이 다음 세대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다음으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이니까.
그 다리 위에 놓일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은다.
어찌 보면, 제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을 함께한 공간이 바로 범일동입니다. 특히 지금 재개발 되는 공간은,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과, 많은 게이들을 만나며 지냈던 추억이 모두 녹아 있어요. 사장님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곳이 완전히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허전해집니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아, ‘그게 뭐였지?’ 하고 기억조차 흐릿해질까 두렵더라고요.
- 오스(범일동 30년차, 60대 게이)
살다 보면 누구나 외로울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친구처럼 편히 갈 수 있는, 집 이외의 또 다른 ‘집’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게 참 소중해요. 나를 반겨주는 단골집이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거든요.
저희 가게에 오는 친구들도 이곳을 진짜 집처럼 느껴요. 그걸 어떻게 아냐면, 명절 때 다들 여기부터 찾아오거든요. 본가보다 먼저 여기부터 들러요. 군대 간 친구도 휴가 나오면 처음에는 집에 갔다가, 두 번째 휴가부터는 집에 말도 안 하고 그냥 바로 여기부터 와요. 여기서 실컷 놀다가 그제야 집에 갑니다. 그만큼 편안한 곳이라는 거죠.
몇 번 오다 보면 자연스레 아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그렇게 얼굴 트고 인사하다 보면 1, 2년쯤 지나선 진짜 가족처럼 가까워져요.
- 클로즈(前 닉스) 사장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부산에 처음 와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드나든 공간, 가장 많이 걸었던 골목 1위가 바로 그곳이더라고. 한 집으로만 따져도 ‘루팡’ 자리가 단연 1등이야. 생각해 보면, 거의 내 살아생전 가장 오래 발을 붙인 장소가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더라.
그동안 거기서 쓴 돈만 해도 아마 수천만 원은 될 거야. 거기서 만난 사람, 오다 가다 스쳐 간 인연들도 정말 너무 많고. 그런데 그 모든 게 어느 순간 한꺼번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묘했어.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각각 3년 다니잖아. 대학도 기껏해야 4년인데, 거기는 무려 20년을 다녔던 곳이야. 그러니 그 자리가 사라진다는 건, 마치 내 인생의 한 챕터가 통째로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야.
- 선우비(범일동 20년차, 50대 게이)
전시
범일동의 사진들, 인터뷰 기록들, 에세이들.
1차 전시
때: 2025. 9/25(목)-28(일), 오후 3시 ~ 가게 영업 마감시간까지
곳: 클로즈(동구 범일로102번길 20-6, 1층) & 1988라운지(동구 범일일길 10, 1층 )
2차 전시
때: 2025년 11월 21일~30일. 12시~20시
곳: '안녕 예술가' 전시공간(중구 동광길 42)
문의: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 (카톡채널 https://pf.kakao.com/_DJUWxb )
1차 전시 - 장소1: 클로즈
부산 동구 범일로102번길 20-6, 1층(클로즈)
1차 전시 - 장소2: 1988라운지
부산 동구 범일일길 10, 1층(1988라운지)
2차 전시 장소: 안녕예술가
부산 중구 동광길 42, 1층 (안녕예술가)
다가오는 일정 안내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 11월 중
- 후원 리워드: 범일동 기록집(사진, 인터뷰, 에세이), 룸스프레이 "범일의 밤"
범일동 기록사업 웹아카이브 오픈
- 2026년 중 (예정)
범일동을 기록한 사람들: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 '일동졸업 기획단'
(선우비, 오스, 휴고, 마르스, 태오, 푸른, 모리)
본 사업은 비온뒤무지개재단 이반시티퀴어문화기금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