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쪽수 232p
크기 128*188mm
무게 318g
ISBN 9788936439996
책 소개
40만 독자를 웃기고 울린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의 귀환!
이번에는 더 재미있고, 더 따뜻하다
맵고 짜고 눈물 나게 맛있는 인생의 맛!
세상 가장 낯설고도 눈부신 이웃의 탄생
한국현대사의 굵은 상흔을 남도의 구수한 입말과 뜨거운 인간애로 풀어내며 4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 그 신드롬의 주인공 정지아가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찌니주의보』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이념과 역사의 비극을 눈물겨운 해학으로 승화시키며 독보적인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그가 이번에 펼쳐 보이는 무대는 평균 연령 일흔여덟살의 산골 ‘수평마을’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역사와 이념 너머 한 인간의 전모를 발견하는 소설이었다면, 『찌니주의보』는 낯선 이웃과 밥을 나누며 정체성과 편견 너머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다. 전작이 거침없는 웃음 뒤에 묵직한 슬픔을 남겼다면, 이번 작품은 좀더 빠르고 경쾌한 소동 속에서 더 풍성한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낸다.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토박이와 귀촌인, 한국인과 이주여성, 도시의 젊은이와 농촌의 노인들…… 살아온 시간도 사랑의 방식도 전혀 다른 이들이 한마을에 모여 흉을 보고 싸우고 밥을 먹이며 어느새 이웃이 되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펄떡인다. 정지아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유머는 한층 능청스러워졌고, 인간의 모순과 상처를 헤아리는 다정한 시선은 더욱 섬세해졌다. 익숙한 마을의 정서와 오늘의 첨예한 문제를 한데 품은 이 소설은 전작의 팬부터 처음 정지아를 만나는 독자까지, 세대와 취향 차이를 넘어 한자리에서 웃게 하는 힘을 지녔다.
목차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다
누구나 이유가 있다
누구나 모르고 산다
작가의 말
훑어보기
P.7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런 날이었다. 전날 오후부터 불어온 곳도 불어갈 곳도 헤아리기 어려운 바람이 미친년 널뛰듯 불어젖히더니 자정 넘어 가랑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살금살금 젖은 바람이 비와 함께 땅으로 스며든 것인지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잠귀 밝은 개들의 잠조차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고요한 비였다. 공기 중으로 스며든 습기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불안을 토닥여 그 밤, 모든 것들의 잠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달았다. 그 밤, 하늘과 땅 사이도 비에 씻겨 말 그대로 허공(虛空)이었다.
P.20 그것들이 말이여.
그것들이 누군디?
누군가 대구를 맞춰 물었고, 윤 선생은 성을 내며 목청을 높였다.
아깨 말했잖애! 귓구멍은 뒀다 워따 쓸라고? 찌니들 땜시 모였당게.
찌니들이 뭐슬 워쨌가니?
갸들이 말이여.
윤 선생이 터무니없이 목소리를 낮췄고 사람들은 덩달아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귀를 기울였다. 윤 선생의 뒤이은 말은 누구도 상상한 적 없는, 수평마을에서 나고 자랐거나, 시집와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찌니들이 말이여. 레지랴 레지.
P.42~43 촤악! 경쾌한 소리가 적막한 밤의 대기 속으로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쑤언의 손이 어찌나 매웠는지 이장은 피우던 담배를 저도 모르게 떨구고는 손이 닿지도 않는 맞은 부위 근처를 잔망스럽게 마구 쓰다듬었다. 쑤언은 이장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에라이, 쫌생아! 참말로 쪼까낼라고? 죽을 날 받아논 할매들이 그리 무섭냐?
그렇지! 참으면 쑤언이 아니지. 물 설고 말 선 이국 생활의 고충을 짐작하면서도 이장이 아내를 다독이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참는 법이라고는 없는 쑤언의 성품 탓이었다. 단 한번도 쑤언은 순순히 예,라고 하는 법이 없다. 아들 늦장가 보내놓고 덩실덩실 춤을 췄던 어머니에게도 그랬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쑤언을 추켜세웠다.
P.80~81 제 친구 중에 미친년이 하나 있어요.
예전엔 동네마다 미친년이 하나씩 있었다. 수평마을 미친년은 어느 해인가 누에가 어른 가운뎃손가락보다 통실통실 살이 올랐을 무렵 집을 떠난 뒤 소식이 끊겼다. 필경 객사했을 테지. 알면서도 그 집 어머니는 죽는 날까지 아랫목에 미친년 밥사발을 묻어놓았더랬다. 노상 미친년이라 불러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이를 마지막으로 수평마을에서는 더이상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약이 좋아 그런지 세월이 좋아 그런지 요새는 다른 마을에서도 미친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서울에는 요즘도 미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젊은 처자가 워짜다가……
이장이 혀를 차며 말을 잇지 못하자 혜진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진짜로 미친 게 아니라요……
혜진이 웃느라 말을 잇지 못하자 냉큼 성진이 받았다.
닭을 키워요.
서울서? 달걀 묵을라고?
찌니들이 서로 마주 보며 꺄르르, 소녀들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아니라 우리 찹쌀 모찌처럼 애완용으로 키운다구요.
P.100~101 혜진은 외삼촌의 정신병원에서 각종 검사와 상담을 했다. 끈 달린 운동화와 휴대전화를 빼앗긴 뒤 철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혜진은 엄마가 정말로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다. 지극히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일주일 만에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엄마의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오는 동안 혜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맞은 것도,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혜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 혜진은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 정신병원에 갇힌다, 세상의 단 한명도 나를 응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언제나 내 편일 줄 알았던 엄마조차도. 그날 혜진의 마음이 닫힌 것은 엄마 탓이었을까? 세상 탓이었을까? 모호한 채로 혜진은 스스로를 탓했다. 모난 돌은 결국 정을 맞는 게 세상의 이치고, 이성애자의 세계에서 동성애자는 모난 존재이니까. 그런데 지금 쑤언은 레즈비언이 코리안이나 아메리칸과 동급의 말이라도 되는 양 저리 쉽게 떠들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찌니네뿐만 아니라 이장의 마음도 어쩐지 홀가분해졌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집주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P.118~119 먼 일이요?
기희 비명을 듣고 달려온 장씨댁이 놀라 물었다.
우리 애가 지렁이를 먹어요!
워매, 달구새끼헌티 먼 일이 생긴 중 알고 심장이 벌렁벌렁 했구만은. 아니, 달구새끼가 지렁이를 묵제 글먼 지렁이가 달구새끼를 묵겄소?
장씨댁의 나름 위로에도 불구하고 기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 우리 애가 이런 애가 아니란 말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지렁이는 쳐다도 안 봤단 말예요.
본래 달구새끼들이 지렁이도 묵고 굼벵이도 묵고 뱀도 묵소. 사료보담 고런 걸 묵어야 달걀도 맛나요. 과 묵어도 맛나고.
P.150 한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꼭 좀 알아봐달라고 당부한 뒤 이장은 걸음을 옮겼다. 윤 선생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중일 터였다. 마음이 급했다. 아무리 미워도 한동네 사람 아닌가. 나랏돈 받는 이장이니 동네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게 마땅한 도리였다. 동네 사람들을 밀어낸 뒤 마지막으로 대문을 나선 이장이 문을 닫으려는 찰나 한씨가 쑥 고개를 들이밀고 외쳤다.
고맙소이, 레지 보살! 복 받을 거여!
왜 레지 부처가 아니고 레지 보살인지는 한씨만 알 터였다.
저자 소개
| 정지아 |
|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5·18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노근리평화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출판사 및 추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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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232p
크기 128*188mm
무게 318g
ISBN 9788936439996
책 소개
40만 독자를 웃기고 울린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의 귀환!
이번에는 더 재미있고, 더 따뜻하다
맵고 짜고 눈물 나게 맛있는 인생의 맛!
세상 가장 낯설고도 눈부신 이웃의 탄생
한국현대사의 굵은 상흔을 남도의 구수한 입말과 뜨거운 인간애로 풀어내며 4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 그 신드롬의 주인공 정지아가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찌니주의보』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이념과 역사의 비극을 눈물겨운 해학으로 승화시키며 독보적인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그가 이번에 펼쳐 보이는 무대는 평균 연령 일흔여덟살의 산골 ‘수평마을’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역사와 이념 너머 한 인간의 전모를 발견하는 소설이었다면, 『찌니주의보』는 낯선 이웃과 밥을 나누며 정체성과 편견 너머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다. 전작이 거침없는 웃음 뒤에 묵직한 슬픔을 남겼다면, 이번 작품은 좀더 빠르고 경쾌한 소동 속에서 더 풍성한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낸다.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토박이와 귀촌인, 한국인과 이주여성, 도시의 젊은이와 농촌의 노인들…… 살아온 시간도 사랑의 방식도 전혀 다른 이들이 한마을에 모여 흉을 보고 싸우고 밥을 먹이며 어느새 이웃이 되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펄떡인다. 정지아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유머는 한층 능청스러워졌고, 인간의 모순과 상처를 헤아리는 다정한 시선은 더욱 섬세해졌다. 익숙한 마을의 정서와 오늘의 첨예한 문제를 한데 품은 이 소설은 전작의 팬부터 처음 정지아를 만나는 독자까지, 세대와 취향 차이를 넘어 한자리에서 웃게 하는 힘을 지녔다.
목차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다
누구나 이유가 있다
누구나 모르고 산다
작가의 말
훑어보기
P.7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런 날이었다. 전날 오후부터 불어온 곳도 불어갈 곳도 헤아리기 어려운 바람이 미친년 널뛰듯 불어젖히더니 자정 넘어 가랑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살금살금 젖은 바람이 비와 함께 땅으로 스며든 것인지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잠귀 밝은 개들의 잠조차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고요한 비였다. 공기 중으로 스며든 습기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불안을 토닥여 그 밤, 모든 것들의 잠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달았다. 그 밤, 하늘과 땅 사이도 비에 씻겨 말 그대로 허공(虛空)이었다.
P.20 그것들이 말이여.
그것들이 누군디?
누군가 대구를 맞춰 물었고, 윤 선생은 성을 내며 목청을 높였다.
아깨 말했잖애! 귓구멍은 뒀다 워따 쓸라고? 찌니들 땜시 모였당게.
찌니들이 뭐슬 워쨌가니?
갸들이 말이여.
윤 선생이 터무니없이 목소리를 낮췄고 사람들은 덩달아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귀를 기울였다. 윤 선생의 뒤이은 말은 누구도 상상한 적 없는, 수평마을에서 나고 자랐거나, 시집와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찌니들이 말이여. 레지랴 레지.
P.42~43 촤악! 경쾌한 소리가 적막한 밤의 대기 속으로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쑤언의 손이 어찌나 매웠는지 이장은 피우던 담배를 저도 모르게 떨구고는 손이 닿지도 않는 맞은 부위 근처를 잔망스럽게 마구 쓰다듬었다. 쑤언은 이장을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에라이, 쫌생아! 참말로 쪼까낼라고? 죽을 날 받아논 할매들이 그리 무섭냐?
그렇지! 참으면 쑤언이 아니지. 물 설고 말 선 이국 생활의 고충을 짐작하면서도 이장이 아내를 다독이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참는 법이라고는 없는 쑤언의 성품 탓이었다. 단 한번도 쑤언은 순순히 예,라고 하는 법이 없다. 아들 늦장가 보내놓고 덩실덩실 춤을 췄던 어머니에게도 그랬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쑤언을 추켜세웠다.
P.80~81 제 친구 중에 미친년이 하나 있어요.
예전엔 동네마다 미친년이 하나씩 있었다. 수평마을 미친년은 어느 해인가 누에가 어른 가운뎃손가락보다 통실통실 살이 올랐을 무렵 집을 떠난 뒤 소식이 끊겼다. 필경 객사했을 테지. 알면서도 그 집 어머니는 죽는 날까지 아랫목에 미친년 밥사발을 묻어놓았더랬다. 노상 미친년이라 불러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이를 마지막으로 수평마을에서는 더이상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약이 좋아 그런지 세월이 좋아 그런지 요새는 다른 마을에서도 미친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서울에는 요즘도 미친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고, 젊은 처자가 워짜다가……
이장이 혀를 차며 말을 잇지 못하자 혜진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진짜로 미친 게 아니라요……
혜진이 웃느라 말을 잇지 못하자 냉큼 성진이 받았다.
닭을 키워요.
서울서? 달걀 묵을라고?
찌니들이 서로 마주 보며 꺄르르, 소녀들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아니라 우리 찹쌀 모찌처럼 애완용으로 키운다구요.
P.100~101 혜진은 외삼촌의 정신병원에서 각종 검사와 상담을 했다. 끈 달린 운동화와 휴대전화를 빼앗긴 뒤 철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혜진은 엄마가 정말로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다. 지극히 정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일주일 만에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엄마의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오는 동안 혜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맞은 것도,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혜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 혜진은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다.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 정신병원에 갇힌다, 세상의 단 한명도 나를 응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언제나 내 편일 줄 알았던 엄마조차도. 그날 혜진의 마음이 닫힌 것은 엄마 탓이었을까? 세상 탓이었을까? 모호한 채로 혜진은 스스로를 탓했다. 모난 돌은 결국 정을 맞는 게 세상의 이치고, 이성애자의 세계에서 동성애자는 모난 존재이니까. 그런데 지금 쑤언은 레즈비언이 코리안이나 아메리칸과 동급의 말이라도 되는 양 저리 쉽게 떠들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찌니네뿐만 아니라 이장의 마음도 어쩐지 홀가분해졌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집주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P.118~119 먼 일이요?
기희 비명을 듣고 달려온 장씨댁이 놀라 물었다.
우리 애가 지렁이를 먹어요!
워매, 달구새끼헌티 먼 일이 생긴 중 알고 심장이 벌렁벌렁 했구만은. 아니, 달구새끼가 지렁이를 묵제 글먼 지렁이가 달구새끼를 묵겄소?
장씨댁의 나름 위로에도 불구하고 기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 우리 애가 이런 애가 아니란 말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지렁이는 쳐다도 안 봤단 말예요.
본래 달구새끼들이 지렁이도 묵고 굼벵이도 묵고 뱀도 묵소. 사료보담 고런 걸 묵어야 달걀도 맛나요. 과 묵어도 맛나고.
P.150 한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꼭 좀 알아봐달라고 당부한 뒤 이장은 걸음을 옮겼다. 윤 선생 속이 타들어가고 있는 중일 터였다. 마음이 급했다. 아무리 미워도 한동네 사람 아닌가. 나랏돈 받는 이장이니 동네일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게 마땅한 도리였다. 동네 사람들을 밀어낸 뒤 마지막으로 대문을 나선 이장이 문을 닫으려는 찰나 한씨가 쑥 고개를 들이밀고 외쳤다.
고맙소이, 레지 보살! 복 받을 거여!
왜 레지 부처가 아니고 레지 보살인지는 한씨만 알 터였다.
저자 소개
| 정지아 |
|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5·18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노근리평화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출판사 및 추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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