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쪽수 492p
크기 140*210mm
무게 640g
ISBN 9788937428067
책 소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올해 1월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타이완 문학 붐’을 일으킨 『귀신들의 땅』의 작가 천쓰홍의 최신작 『67번째 천산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이 ‘귀신’이라는 민속적 모티프를 통해 한 일가족을 중심으로 타이완의 아픈 현대사를 담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유년 시절에 만나 평생에 걸쳐 우정과 헌신, 상처를 주고받은 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관계를 통해 고독과 치유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탐색한 걸작이다.
목차
1부 산책
1. 자다 11
2. 물구나무서기 40
3. 새점 68
4. 산을 만드는 사람 98
5. 킥보드 131
6. 숲 162
7. 나무가 없다 196
2부 길에 오르다
1. 발라드 227
2. 빵 260
3. 농어 291
4. 수세미 325
5. 배의 잔해 361
6. 바퀴벌레 396
7. 나사 429
3부 낭트
1. 공사장 465
2. 포스터 473
작가의 말 481
옮긴이의 말 487
훑어보기
P.12 어쩌면 기다림은 그녀가 살아가는 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좀 더 기다리고, 또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것. 기다림은 수동이 아니라 능동의 상태였다. 육체의 전투태세라 할 수 있다. 아주 잘 자기 위해 그녀는 반드시 그를 기다려야 했다.
P.34 말해요. 나는 들을 테니까. 그의 입은 깊은 바다였다. 대답을 건지는 건 물고기를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그 바다는 상대의 모든 말을 받아들였다. 말없이 넉넉하게 전부 다. 그리고 상대의 모든 비밀을 지켜주었다.
P.237 그녀가 마지막으로 화를 낸 게 언제였더라.
정확히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화를 내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화를 내려면 진심이 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이 진심이 아니고 성실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을 원하지 않았다. 진심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분노하기 위해선 온몸의 근육을 다 동원해야 하고, 감정이 격앙되면 자칫 진심의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저자 소개
| 천쓰홍 (저) |
| 타이완 소설가이자 영화배우, 번역가.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1976년 타이완 용징향(永靖鄕)에서 한 농가의 아홉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푸런(輔仁) 대학 영문과와 국립 타이완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독자와 평론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현재 타이완 문단의 중심에 떠오른 작가로, 임영삼(林榮三) 단편소설상과 구가(九歌) 출판사 연도소설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귀신들의 땅』으로 타이완 최고의 양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금정상(金鼎獎) 문학부문상과 금전상(金典賞)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반역의 베를린』 『베를린은 계속 반역중이다』 『아홉 번째 몸』과 소설 『손톱에 꽃이 피는 세대』 『영화귀도(營火鬼道)』 『태도』 『변신의 플로리다』 『67번째 천산갑』, 『셔터우의 세 자매』 등을 출간했다. 대표작 『귀신들의 땅』은 15개 언어로 출간되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 김태성 (역) |
| 서울에서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타이완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학 연구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漢聲文化硏究所)를 운영하면서 중국 문학 및 인문저작 번역과 문학 교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문화번역 관련 사이트인 CCTSS 고문, 《인민문학》한국어판 총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고전의 배후』, 『방관시대의 사람들』,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등 140여 권의 중국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2016년 중국 신문광전총국에서 수여하는 ‘중화도서특수공헌상’을 수상했다. |
출판사 및 추천의 말
베스트셀러 『귀신들의 땅』
천쓰홍의 최신작!
《뉴욕 타임스》, 《르몽드》, 《마이니치 신문》 격찬!
■ 너 없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우리 같이 천산갑을 보러 가지 않을래?
악의가 가득한 이 시대로부터 함께 도망치자, 함께 잠들자
소설 맨 마지막에 가서야 이름이 밝혀지는 이성애자인 ‘그녀’와 동성애자인 ‘그’. 그들은 유년 시절에 한 매트리스 광고의 아역 모델을 뽑는 촬영장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면서 매트리스를 찍는 광고에서 달콤한 잠을 자는 연기를 선보였고, 광고는 큰 성공을 거둔다. 그때부터 둘은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으며, 어머니는 자신이 스타가 되기를 원했으나 실패하자 딸을 통해 성공과 돈을 얻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손대는 것마다 족족 실패하는 사업가이자 난봉꾼이고, 엄마는 자식인 그에겐 다정하지만 바람난 남편과 하루가 멀다 하고 난폭한 싸움을 벌인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희귀 동물인 천산갑을 키워 그 비늘을 약재로 팔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들이 사는 산 위의 집에 수십 마리 천산갑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천산갑들은 오직 어린 아들인 ‘그’에게만 친밀감과 신뢰를 보였고, 산 위의 집에 놀러 왔다가 어린 ‘그’와 천산갑이 어울리는 모습을 목격한 매트리스 광고 감독은 이를 소재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그’와 ‘그녀’는 매트리스 광고뿐 아니라 천산갑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도 함께 출연하게 된다. 천산갑과 아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프랑스 낭트 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되고, 어린 ‘그녀’와 ‘그’는 제작진과 함께 함께 낭트로 가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엄마와 함께 ‘동물’을 잡으러 갔던 두 아이는 결국 시간을 놓쳐 낭트에 함께 가지 못한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그’는 파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동성 연인 J의 죽음이 불러온 크나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그의 작은 아파트에 불쑥 ‘그녀’가 찾아온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출연했던 그 천산갑 영화가 4K로 복원되어 낭트 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열리게 되었고, 그녀와 그가 영화제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간 거물 정치인의 부인이 되어 자식도 여럿 낳았고, 한물간 영화배우이지만 가끔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 도무지 제대로 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제를 핑계로 그의 아파트에 쳐들어온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잠동무였던 그와 함께 마침내 깊은 잠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찾아온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파리에서 낭트로 함께 길을 나서는 두 남녀, 그들에겐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와 찾아야 할 누군가가 있다.
■ 말할 수 없는 비밀과 표현 못 할 고통이 이어지는 길
그 끝에서 고개를 돌리자, 그 위에는 천산갑의 발자국이 가득했다
한국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천쓰홍의 이 작품은, 작가가 게이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게이인 주인공 ‘그’를 통해 작가는 성적지향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 가득했던 1980년대부터, 동성혼이 합법화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난과 비애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또한 전작 『귀신들의 땅』의 주요 테마였던,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거세게 강요된 임신, 출산, 양육, 결혼을 둘러싼 가부장적인 압박과 그로 인한 처절한 고통 역시 ‘그녀’를 통해 재현한다. 전작이 수많은 인물의 입을 빌려 다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를 쏟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오직 두 사람, ‘그녀’와 ‘그’의 돌고 도는 몇십 년 인연을 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미스터리와 감춰진 비밀을 탐색한다.
게이인 그와 헤테로인 그녀 사이에 맺어진 강한 인연의 접점은 무엇일까. 헤테로인 그녀가 게이인 그를 짝사랑했다든가 하는 식의 납작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서로를 찾는 마음은 혹독한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그 아픔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헤아리는 데서 생겨난다. 그가 수많은 남자들과의 스치는 쾌락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 그녀가 여성이자 얼굴이 알려진 유명 스타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남모를 수모와 고통. 또한 이로 인해 두 사람이 서로를 찔러 서로에게 상처입힐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맥락이 엮이고 엮여 비밀의 매듭이 되고, 빙글빙글 도는 나선형 계단이 되고, 독자는 그 비밀을 풀어가며 결국 그들의 선택과 인연(또는 악연)을 이해하게 된다.
중화권에는 이런 관계를 가리키는 단어도 실제로 존재한다. ‘게이미(Gay蜜)’라는 이 단어는 헤테로 여성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게이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게이미’는 보통 여성들끼리 주고받을 법한 잡담을 나누는 게이 친구를 가리키는 가벼운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자들이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공유하고 그 비밀을 지켜 주는 존재, 여자들이 성적 긴장 없이 친교할 수 있는 남자를 말한다. 그 역도 성립하는데, 게이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헤테로 남성과는 달리 여성들은 게이미인 친구가 겪는 어려움과 상처를 공감한다. 천쓰홍은 실제로 독일 라이프치히 동물원에 ‘타이완에서 온 천산갑’을 보러 갔다가, 한 게이 남성과 힘든 결혼생활을 겪고 있는 헤테로 여성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역시 학창 시절, 많은 여성 학우들의 ‘게이미’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늘날 타이완 문학계에선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지(同志) 문학’이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많은 성소수자 작가들이 많은 지지를 받으며 활약하고 있고, 천쓰홍은 그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타이완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혼이 입법화된, 성소수자 인권에서는 선진국인 국가가 되었지만, 여러 동지 문학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아직도 많은 억압과 고통의 흔적을 생생하게 전한다. ‘게이미’들의 지지자이자 친구인 여성들의 인권 개선에 대한 목소리 또한 여전히 드높아서,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문단에서, 사회와 정치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귀신들의 땅』이 황량하고 외딴 타이완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괴이하면서도 친근한 분위기를 담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가을이 찾아오는 파리에서 시작해 낭트 외곽에서 끝난다. 소설은 온통 길 위에서의 이야기다. 떠나는 사람이 있고, 남겨지고 버림받아 상처받는 사람이 있으며, 누군가를 찾아 길을 나서는 사람, 그리고 그의 곁을 동행하는 이가 있다. 옛 인연에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스치듯 던진 말 한마디와 짧은 단서에서 또 다른 여행의 길이 이어진다.
『귀신들의 땅』이 지극히 문학적이면서도 한 편의 걸작 미스터리 같은 장치를 갖췄듯이, 『67번째 천산갑』 역시 인물의 정서와 기억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빠르고 급격하게 전환되면서, 마치 정교한 태엽장치처럼 착착 퍼즐을 맞춰가며 끝을 향해 달린다. 『귀신들의 땅』이 그랬듯, 『67번째 천산갑』 역시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장을 들추게 만드는 강력한 구성의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빼어난 이야기 솜씨와 눈물과 폭소를 동시에 부르는 문장력, 가슴 먹먹한 감동 역시 여전하다. 천쓰홍의 작품이 타이완을 넘어 전 세계에 읽히고 찬사를 부르는 이유는, 예측 불가능한 구성력을 발휘하여 독자를 끌어당기는 동시에 보편적인 재미와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결합하는 그 재능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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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쪽수 492p
크기 140*210mm
무게 640g
ISBN 9788937428067
책 소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올해 1월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타이완 문학 붐’을 일으킨 『귀신들의 땅』의 작가 천쓰홍의 최신작 『67번째 천산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이 ‘귀신’이라는 민속적 모티프를 통해 한 일가족을 중심으로 타이완의 아픈 현대사를 담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유년 시절에 만나 평생에 걸쳐 우정과 헌신, 상처를 주고받은 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관계를 통해 고독과 치유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탐색한 걸작이다.
목차
1부 산책
1. 자다 11
2. 물구나무서기 40
3. 새점 68
4. 산을 만드는 사람 98
5. 킥보드 131
6. 숲 162
7. 나무가 없다 196
2부 길에 오르다
1. 발라드 227
2. 빵 260
3. 농어 291
4. 수세미 325
5. 배의 잔해 361
6. 바퀴벌레 396
7. 나사 429
3부 낭트
1. 공사장 465
2. 포스터 473
작가의 말 481
옮긴이의 말 487
훑어보기
P.12 어쩌면 기다림은 그녀가 살아가는 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좀 더 기다리고, 또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것. 기다림은 수동이 아니라 능동의 상태였다. 육체의 전투태세라 할 수 있다. 아주 잘 자기 위해 그녀는 반드시 그를 기다려야 했다.
P.34 말해요. 나는 들을 테니까. 그의 입은 깊은 바다였다. 대답을 건지는 건 물고기를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하지만 그 바다는 상대의 모든 말을 받아들였다. 말없이 넉넉하게 전부 다. 그리고 상대의 모든 비밀을 지켜주었다.
P.237 그녀가 마지막으로 화를 낸 게 언제였더라.
정확히 특정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화를 내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화를 내려면 진심이 필요했다. 그녀는 자신이 진심이 아니고 성실하지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을 원하지 않았다. 진심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분노하기 위해선 온몸의 근육을 다 동원해야 하고, 감정이 격앙되면 자칫 진심의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저자 소개
| 천쓰홍 (저) |
| 타이완 소설가이자 영화배우, 번역가.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1976년 타이완 용징향(永靖鄕)에서 한 농가의 아홉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푸런(輔仁) 대학 영문과와 국립 타이완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독자와 평론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현재 타이완 문단의 중심에 떠오른 작가로, 임영삼(林榮三) 단편소설상과 구가(九歌) 출판사 연도소설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귀신들의 땅』으로 타이완 최고의 양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금정상(金鼎獎) 문학부문상과 금전상(金典賞)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반역의 베를린』 『베를린은 계속 반역중이다』 『아홉 번째 몸』과 소설 『손톱에 꽃이 피는 세대』 『영화귀도(營火鬼道)』 『태도』 『변신의 플로리다』 『67번째 천산갑』, 『셔터우의 세 자매』 등을 출간했다. 대표작 『귀신들의 땅』은 15개 언어로 출간되었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 김태성 (역) |
| 서울에서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타이완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학 연구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漢聲文化硏究所)를 운영하면서 중국 문학 및 인문저작 번역과 문학 교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문화번역 관련 사이트인 CCTSS 고문, 《인민문학》한국어판 총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고전의 배후』, 『방관시대의 사람들』,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등 140여 권의 중국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2016년 중국 신문광전총국에서 수여하는 ‘중화도서특수공헌상’을 수상했다. |
출판사 및 추천의 말
베스트셀러 『귀신들의 땅』
천쓰홍의 최신작!
《뉴욕 타임스》, 《르몽드》, 《마이니치 신문》 격찬!
■ 너 없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우리 같이 천산갑을 보러 가지 않을래?
악의가 가득한 이 시대로부터 함께 도망치자, 함께 잠들자
소설 맨 마지막에 가서야 이름이 밝혀지는 이성애자인 ‘그녀’와 동성애자인 ‘그’. 그들은 유년 시절에 한 매트리스 광고의 아역 모델을 뽑는 촬영장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면서 매트리스를 찍는 광고에서 달콤한 잠을 자는 연기를 선보였고, 광고는 큰 성공을 거둔다. 그때부터 둘은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으며, 어머니는 자신이 스타가 되기를 원했으나 실패하자 딸을 통해 성공과 돈을 얻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손대는 것마다 족족 실패하는 사업가이자 난봉꾼이고, 엄마는 자식인 그에겐 다정하지만 바람난 남편과 하루가 멀다 하고 난폭한 싸움을 벌인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희귀 동물인 천산갑을 키워 그 비늘을 약재로 팔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들이 사는 산 위의 집에 수십 마리 천산갑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천산갑들은 오직 어린 아들인 ‘그’에게만 친밀감과 신뢰를 보였고, 산 위의 집에 놀러 왔다가 어린 ‘그’와 천산갑이 어울리는 모습을 목격한 매트리스 광고 감독은 이를 소재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하여 ‘그’와 ‘그녀’는 매트리스 광고뿐 아니라 천산갑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도 함께 출연하게 된다. 천산갑과 아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프랑스 낭트 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되고, 어린 ‘그녀’와 ‘그’는 제작진과 함께 함께 낭트로 가기로 한다. 그러나 ‘그’의 엄마와 함께 ‘동물’을 잡으러 갔던 두 아이는 결국 시간을 놓쳐 낭트에 함께 가지 못한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그’는 파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동성 연인 J의 죽음이 불러온 크나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그의 작은 아파트에 불쑥 ‘그녀’가 찾아온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출연했던 그 천산갑 영화가 4K로 복원되어 낭트 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열리게 되었고, 그녀와 그가 영화제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간 거물 정치인의 부인이 되어 자식도 여럿 낳았고, 한물간 영화배우이지만 가끔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 도무지 제대로 된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제를 핑계로 그의 아파트에 쳐들어온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잠동무였던 그와 함께 마침내 깊은 잠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찾아온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파리에서 낭트로 함께 길을 나서는 두 남녀, 그들에겐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와 찾아야 할 누군가가 있다.
■ 말할 수 없는 비밀과 표현 못 할 고통이 이어지는 길
그 끝에서 고개를 돌리자, 그 위에는 천산갑의 발자국이 가득했다
한국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천쓰홍의 이 작품은, 작가가 게이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게이인 주인공 ‘그’를 통해 작가는 성적지향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 가득했던 1980년대부터, 동성혼이 합법화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난과 비애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또한 전작 『귀신들의 땅』의 주요 테마였던,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거세게 강요된 임신, 출산, 양육, 결혼을 둘러싼 가부장적인 압박과 그로 인한 처절한 고통 역시 ‘그녀’를 통해 재현한다. 전작이 수많은 인물의 입을 빌려 다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를 쏟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오직 두 사람, ‘그녀’와 ‘그’의 돌고 도는 몇십 년 인연을 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미스터리와 감춰진 비밀을 탐색한다.
게이인 그와 헤테로인 그녀 사이에 맺어진 강한 인연의 접점은 무엇일까. 헤테로인 그녀가 게이인 그를 짝사랑했다든가 하는 식의 납작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이 서로를 찾는 마음은 혹독한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그 아픔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헤아리는 데서 생겨난다. 그가 수많은 남자들과의 스치는 쾌락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 그녀가 여성이자 얼굴이 알려진 유명 스타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남모를 수모와 고통. 또한 이로 인해 두 사람이 서로를 찔러 서로에게 상처입힐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맥락이 엮이고 엮여 비밀의 매듭이 되고, 빙글빙글 도는 나선형 계단이 되고, 독자는 그 비밀을 풀어가며 결국 그들의 선택과 인연(또는 악연)을 이해하게 된다.
중화권에는 이런 관계를 가리키는 단어도 실제로 존재한다. ‘게이미(Gay蜜)’라는 이 단어는 헤테로 여성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게이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게이미’는 보통 여성들끼리 주고받을 법한 잡담을 나누는 게이 친구를 가리키는 가벼운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자들이 누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공유하고 그 비밀을 지켜 주는 존재, 여자들이 성적 긴장 없이 친교할 수 있는 남자를 말한다. 그 역도 성립하는데, 게이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헤테로 남성과는 달리 여성들은 게이미인 친구가 겪는 어려움과 상처를 공감한다. 천쓰홍은 실제로 독일 라이프치히 동물원에 ‘타이완에서 온 천산갑’을 보러 갔다가, 한 게이 남성과 힘든 결혼생활을 겪고 있는 헤테로 여성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역시 학창 시절, 많은 여성 학우들의 ‘게이미’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늘날 타이완 문학계에선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지(同志) 문학’이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많은 성소수자 작가들이 많은 지지를 받으며 활약하고 있고, 천쓰홍은 그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타이완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혼이 입법화된, 성소수자 인권에서는 선진국인 국가가 되었지만, 여러 동지 문학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아직도 많은 억압과 고통의 흔적을 생생하게 전한다. ‘게이미’들의 지지자이자 친구인 여성들의 인권 개선에 대한 목소리 또한 여전히 드높아서,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문단에서, 사회와 정치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귀신들의 땅』이 황량하고 외딴 타이완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괴이하면서도 친근한 분위기를 담아냈다면, 『67번째 천산갑』은 가을이 찾아오는 파리에서 시작해 낭트 외곽에서 끝난다. 소설은 온통 길 위에서의 이야기다. 떠나는 사람이 있고, 남겨지고 버림받아 상처받는 사람이 있으며, 누군가를 찾아 길을 나서는 사람, 그리고 그의 곁을 동행하는 이가 있다. 옛 인연에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스치듯 던진 말 한마디와 짧은 단서에서 또 다른 여행의 길이 이어진다.
『귀신들의 땅』이 지극히 문학적이면서도 한 편의 걸작 미스터리 같은 장치를 갖췄듯이, 『67번째 천산갑』 역시 인물의 정서와 기억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빠르고 급격하게 전환되면서, 마치 정교한 태엽장치처럼 착착 퍼즐을 맞춰가며 끝을 향해 달린다. 『귀신들의 땅』이 그랬듯, 『67번째 천산갑』 역시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다시 앞장을 들추게 만드는 강력한 구성의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빼어난 이야기 솜씨와 눈물과 폭소를 동시에 부르는 문장력, 가슴 먹먹한 감동 역시 여전하다. 천쓰홍의 작품이 타이완을 넘어 전 세계에 읽히고 찬사를 부르는 이유는, 예측 불가능한 구성력을 발휘하여 독자를 끌어당기는 동시에 보편적인 재미와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결합하는 그 재능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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